[리뷰] 왕자 안나오는 '어린왕자'…몸으로 그린 어른 동화

입력 2022-06-22 17:53   수정 2023-04-27 09:39


무대 위 몇 명의 배우들이 눕고, 허리를 구부리고, 다리를 올려 모자의 모습을 만든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에서 어린왕자만 알아봤다는 ‘보아뱀 그림’이다. 어린왕자가 이제 “양을 그려 달라”고 하자 배우들은 그냥 상자를 몸으로 표현하고는 양이 담겼다는 표정을 짓는다.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

지난 18일 경기 고양시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개막한 ‘어린왕자’에서는 친숙한 동명 소설의 스토리가 대사보다는 배우의 동작과 안무 등으로 전개된다. 2019년 자폐아에서 동물학자가 된 템플의 자전적 이야기를 신체극(피지컬 시어터)으로 풀어낸 ‘템플’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얻은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신작이다. ‘템플’을 함께 만든 연출가 민준호와 안무가 심새인이 이번 신체극에서도 공동 연출을 맡았다.

보아뱀 그림뿐 아니라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경비행기와 장미꽃, 여우 등이 배우들의 몸짓으로 표현된다. 사막 위에 불시착한 고장 난 경비행기 엔진이 털털거리는 모습도 앙상블 배우들(강은나·이동명·이종혁·최미령)의 ‘조합’으로 실감 나게 구현된다. 어린왕자에게 투정을 부리는 장미꽃의 가시와 어린왕자에게 길들여지는 여우의 꼬리 등이 배우들의 신체가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면서 눈앞에 펼쳐진다.

무대에 어린왕자는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배우 홍지희가 목소리로만 어린왕자를 연기한다. 사막에 불시착한 ‘나’(마현진 분)는 마치 어린왕자가 보이는 것처럼 연기하며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객석 곳곳에 설치된 여러 스피커를 통해 어린왕자의 목소리가 울리는데, 마치 어린왕자가 공연장 곳곳을 뛰어노는 듯하다.

극의 하이라이트인 어린왕자와 ‘나’가 작별하는 장면에서 이런 효과는 극대화한다. 객석 스피커를 통해 어린왕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면서 조명이 일부 객석을 비춘다. 마치 관객 자신이 순수한 어린왕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동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에게 어색하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무대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는 관객들 사이에서 “아동극인 줄 알고 왔는데 어른이 보면 더 재미있겠다”는 말이 들렸다. 소설을 재미있게 읽었거나, 가슴 속 숨겨놓은 ‘오아시스’와 같은 순수함을 찾고 싶은 관객이라면 만족할 만하다. 공연은 오는 26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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